[하지수 한류이야기] 멕시코 광장을 메운 ‘아리랑’, 한류는 국경을 넘었다

하지수 대표 / 기사승인 : 2026-05-20 15: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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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매일안전신문] 지난 5월 6일, 멕시코시티의 중심 소칼로(Zócalo) 광장은 낯설고도 익숙한 장면으로 가득 찼습니다. 멕시코 대통령궁 앞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광장에 울려 퍼진 것은 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을 향한 팬들의 함성이었습니다. 보랏빛 응원봉을 든 팬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고, 한국어 가사를 또렷하게 따라 불렀습니다. 한때 세계 대중문화의 주변부 언어처럼 여겨졌던 한국어가 이제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날 BTS는 멕시코 대통령궁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과 만난 뒤 발코니에 올라 팬들에게 인사했습니다. 멕시코 정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셰인바움 대통령은 BTS를 환영하며 “음악과 가치가 멕시코와 한국을 연결한다”고 밝혔습니다. 멕시코 정부와 외신들은 대통령궁 앞 소칼로 광장에 약 5만 명의 팬들이 모였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Billboard) 역시 광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모습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멤버들은 스페인어로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고,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미 BTS에게 내년에도 다시 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말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장면은 단순한 팬 서비스를 넘어서는 상징성을 남겼습니다. 국가의 상징 공간인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한국 대중음악 그룹이 현지 팬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과거의 문화외교 방식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만남이 단순한 연예 행사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셰인바움 대통령은 앞서 한국 대통령에게 ‘BTS의 멕시코 공연 확대를 희망’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멕시코 공연 티켓은 폭발적인 수요를 기록했고, 일부 외신은 약 15만 석 규모의 공연 티켓에 100만 명 이상이 몰렸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BTS의 멕시코시티 공연은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에서 사흘간 진행됐으며 약 13만5000석이 빠르게 매진됐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한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줍니다. 과거 문화외교는 정부가 공연단을 보내고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먼저 팬들이 움직이고, 그 열기에 기업과 플랫폼, 언론과 국가기관이 반응합니다. 한류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정책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지는 문화 흐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는 이미 중남미 최대 한류 시장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멕시코를 스페인어권 핵심 콘텐츠 시장으로 분석하며, 젊은 인구 비중과 모바일 기반 콘텐츠 소비 문화가 한류 확산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멕시코 인구의 약 60%가 35세 이하 젊은 층이라는 점도 K팝 성장과 연결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한류가 이제 현지 산업과 방송 제작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합뉴스와 고려대 중남미지역원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 대표 신발 브랜드 ‘파남(Panam)’은 K팝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군을 출시했습니다. 또 방송사 텔레비사 우니비시온은 K드라마식 감정선과 슬로모션 연출을 반영한 드라마 《Contrato de Corazones, Tu y Yo》를 제작했습니다. 한류가 단순한 수입문화를 넘어 현지 콘텐츠 문법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멕시코의 한류는 이제 공연장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은 K컬처 행사와 김치 축제, K인플루언서 프로그램 등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관광공사는 멕시코인의 방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제 멕시코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고, 서울을 여행하며 한국식 응원 문화를 공유합니다. 한류가 콘텐츠를 넘어 생활 방식과 감정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류가 이제 ‘번역된 문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거 해외 팬들은 자막과 번역을 통해 한국 콘텐츠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설명 없이도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 감정을 함께 나눕니다. 소칼로 광장에서 팬들이 ‘아리랑’을 따라 부르던 장면은 단순한 떼창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노래가 멕시코 팬들의 감정 속으로 들어간 순간이었습니다.

한때 우리는 미국과 일본,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어 노래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대통령궁 앞 광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노래 앞에서 울고 웃는 풍경은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의 감정을 움직이는 문화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날 소칼로 광장의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였지만 동시에 멕시코 사람들의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류는 공연장을 넘어 세계 도시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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